선교 나가서 가장 힘들었던 것 중의 하나는 이슬람을 배경으로 하는 아프간 사람들의 거짓말을 구분하기 힘들었다는 것입니다. 예를들어 외국인이 길을 물으면 모른다고 대답하는 사람이 없습니다. 그런데 대답을 하는 사람마다 다른 방향을 알려 줍니다. 그래서 항상 서너사람에게 묻고 나서 일치하는 곳으로 가곤 했었던 기억이 납니다. 이렇게 하는 이유는 이들의 거짓말에 대한 기준이 우리와 다르기 때문입니다. 이 사람들은 거짓말이라고 다 같은 거짓말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남에게 피해를 입하고, 사회를 혼란스럽게 하는 거짓말은Black lie라고 해서 죄악시 하지만, 악의가 없는 거짓말은 white lie라고 해서 괜찮다고 말합니다. 그런데 안타까운 것은 그리스도인들 중에서도 이런식의 사고 방식을 가지고 있는 분들이 의외로 많다는 것입니다.
얼마전 한국의 한 기독교 연구소에서 한국 크리스챤들의 의식구조를 조사한 결과 전체 응답수에 62%에 해당하는 사람이 남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 범위내에서 상황에 따라 거짓말을 할 수도 있다고 대답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기억할 것은 성경 말씀 어디에서도 거짓말을 선의의 거짓말, 악의의 거짓말로 구분하지 않습니다. 이것은 사탄이 만들어 놓은 함정입니다. 사단은 선의의 거짓말 혹은 하얀 거짓말은 거짓말이 아니라고 속삭입니다. 그리곤 그 거짓말들을 하게합니다. 우리 속담에 ‘바늘 도둑이 소도둑 된다’는 말이 있습니다. 아주 작은 거짓에 익숙해 진 사람은 결국 큰 문제 앞에서도 거짓을 말하게 됩니다. 하얀 거짓말, 선의의 거짓말이라는 것은 크고, 악한 거짓말을 위한 전주곡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거짓말은 구분할 수 있는 것이 없는 그 자체가 악한 것임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어떤 면에서 우리가 더욱 경계 해야할 것은 소위 말하는 이 하얀 거짓말, 선의의 거짓말입니다. 이 거짓말은 죄라고 느껴지지 않기 때문입니다. 상대방에게 아무런 피해나 손해를 끼친 것이 없는데 그것이 왜 죄가 되느냐는 말입니다. 이렇게 거짓말을 정당화 시킵니다. 죄의 정당화는 더 큰 죄를 쌓아가게 만듭니다. 그리고 이렇게 쌓인 죄는 양심을 마비시킵니다. 그 마비된 양심은 결국 그 사람을 거짓의 노예로 만들어 버립니다. 가랑비에 옷이 젖듯이, 결국 악의가 없는 거짓이 우리의 양심을 마비 시키게 되는 것입니다.
자녀들에게 늘 정직함을 강조하는 만큼 우리의 삶에도 늘 정직함으로 살아갈 수 있어야 합니다. 우리 예닮 성도들의 가정과 일터, 그리고 우리 교회는 아주 사소한 거짓에 대해서도 과감히 ‘NO’라고 외치는 정직함이 있기를 소원합니다.
2023년 6월4일
이우철 목사